결혼생활 25년 만에 내린 나의 결혼관이다. 결혼 전에는 영화 속 한 장면을 떠올리면서 '나도 결혼하면 파티만 하면서 살아야지' 라는 생각에 파티용품 마련에 여념이 없었다. 처음 파리로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가방을 호텔에 던지자마자 샹젤리제 거리로 달려나갔다. 3년째 연속 상연되고 있던 영화 <임마누엘 부인> 한 편을 간단히 해치우고 샹젤리제 거리를 이잡듯이 누비기 시작했다. 얼마나 헤매었을까, 진영장의 옷 한 벌이 내 시선을 붙잡았다. 등이 깊게 파인 검정색 비로드 드레스, 그리고 종이처럼 얇은 자죽으로 만든 팔꿈치까지 덮는 길이의 흰색 롱 장갑. 저 드레스에 저 장갑을 낀다면 영화 속의 주인공이 바로 나인 것이다.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파리 출장비로 받는 2백여 불을 몽땅 털어서 그 장갑을 샀다. 그때 야심찬 계획으로 샀던 그 장갑은 아직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한채 비닐에 곱게 싸여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옷장 맨 밑바닥에 간직되어 있다. 아들 결혼식 때 며느리가 유용하게 쓸 수 있다면 다향일 듯하다.
아무 남자도 만나지 않고 사랑에 빠지지도 않았다면 결혼을 하지 않고 곱게 늙어갈 것이므로 사기를 당할 일도 없고 억울함에 분통이 터질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결혼이라는 사기극의 각본을 쓰고 스스로 그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나는 평소 결혼식에 참석하는 일이 다소 부담스럽게 생각된다. 행복의 출발점에 서 있는 그들을 위해서 마음놓고 출하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저다 결혼식에 참석하면 '안됐다. 큰일났다'는 생각이 앞선다. 저토록 행복에 빠져 있는 새 부부들의 행복이 과연 얼마 동안 유지될까. 결혼을 왜 해야 되는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결혼생활인지, 이에 대한 계획이나 각오도 없이 결혼을 팔자 고치는 일쯤으로 생각하고 육체에 끌려서 아무런 준비 없이 결혼을 한 것이 더욱 나를 힘들게 했었던 것 같다. 목표가 분명치 않았으니 가야 할 길은 당녀히 가시밭길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결혼생활이 행복해서 미치겠다' 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걸 볼 때 다들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때 누군가가 내 귀에 대고 씨익 웃으면서, "넌 지금 사기를 당한거야. 넌 지금 바보같이 속은 것이고 땅을 치며 울게 될 거야." 라고 말해주었다면.
나는 결혼에 대한 비관론자는 아니다. 인간은 상대 이성에게 자연스럽게 이끌리게 되고 이것이 사랑으로 발전하여 사랑의 완결편이라고 생각하는 결혼을 선택하게 된다. 때문에 결혼을 통하여 가족을 구성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가장 합리적인 제도라고 생각된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왜 결혼을 하는 것인지. 어떠한 결혼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함으로써 결혼에 대해서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 자신의 결혼관을 세워야 할 것이다. 결혼은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며 권력이나 돈이 전제 조건이 아닌 것을 아는 사람만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 등.
중국 속담에 결혼을 하는 것은 경험의 부족이고, 이혼을 하는 것은 이해의 부족이고, 재혼을 하는 것은 기억 부족이라고 할 만큼 결혼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나는 이론적으로 결혼에 대해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가진 것은 25년이 조금 넘는 결혼생활뿐이다. 하지만 대학에서 수 많은 책을 독파한 학자들보다 결혼에 대해서는 내가 더 많이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만큼 경험을 통해서 얻은 깨달음과 지혜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오랜 세월에 걸쳐 깨달은 것들을 젊은이들에게 되도록 빨리 알려주고 싶다. 그래서 내가 범한 숱한 오류를 그들이 폴짝 건너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자 김용숙] 동덕여고와 수도여자사범대학교(현 세종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녀는 MBC 공채 4기 탤런트, 대한항공 여승무원, 의류제조업 경영 등을 거치며 한 가지 일에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삶을 살아왔다. 대한항공 여승무원 동우회 회장, MBC 시청자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아나기(아줌마는 나라의 기둥) 대표로 있다. 저서에는 <결혼 大 사기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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