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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건축학개론_다시 돌아가고픈 너와 나의 `서툰 처음`

일상속으로/영화 핫이슈

by 어쩌다 결혼준비 2012. 3. 31.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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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이라는 접두사가 붙은 모든 단어는 항상 설렘을 동반한다. 첫사랑, 첫 키스, 첫 경험. 그저 단지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으로부터 야기되었던 모든 기억의 호불호는 충분히 상쇄된다. 참 신기한 현상이다. 사랑이든, 일이든 우리에게 있어서 모든 경험의 기준은 항상 ‘내가 처음에 했던 것’으로 귀결된다. 잘하지도 않았고 잘할 수도 없었던 처음의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는 건 사실 가슴 아픈 일이다. 지금이야 현재의 나를 되돌아보며 한바탕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는 추억거리에 불과하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처음으로 하나의 경험을 겪는 서툰 존재였다. 그렇게 현재에서 되돌아보는 나의 처음은 낯간지럽고 부끄럽지만 실은 다시 돌아가고픈 시간이기도 하다. <건축학개론>은 바로 비록 서툴렀지만 가장 순수했던 시절에 우리가 겪었던 첫사랑의 기억으로 되돌아가는 영화다.

 

 

 현재 서른 다섯 살의 건축사 ‘승민’(엄태웅)에게 어느 날 잊고 살았던 첫사랑 ‘서연’(한가인)이 찾아와 제주도에 자신의 집을 지어달라고 말한다. 갑작스런 그녀의 등장에 덜컥 그 제안을 받아들인 승민은 건축 문제로 그녀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면서 15년 전있었던 그녀와의 추억을 회상하기 시작한다.

 

 전반적으로 영화는 현재 인물들의 시점에서 진행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사랑의 아련한 느낌이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영화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방식에 있다. 35살이 되어 만난 그들은 그저 오랜만에 만난 대학동창일 뿐이지만 현재의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든 것은 영화의 전반적 정서를 책임지고 있는 과거 장면들 때문이었다. 사실 영화가 흥미로운 부분은 20살 시절의 승민(이제훈)과 서연(배수지)의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인물의 과거를 하나하나 알게 되는 건 관객으로써 가장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그렇듯이 첫사랑의 추억을 끄집어내는 15년 전 회상 장면들은 정서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영화의 중심축을 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과거 장면이 극 전체의 생기를 불어넣는 건 전적으로 배우와 소품의 공이 크다. 특히 20살 승민 역의 이제훈은 첫사랑을 겪는 순진한 소년의 이미지를 자기 자신에 맞게 잘 체득한 점이 눈에 띄었다. 과장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승민의 심정이 전달되는 걸 보면서 개인적으로 다음에 맡을 배역이 궁금해지는 배우가 된 것 같다. 그리고 극 중 승민의 연애상담사로 분한 ‘납뜩이’역의 조정석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웃음을 책임지는 씬 스틸러로 등장하여 극의 활력소를 불어넣어주었다. 또 한 가지 과거의 장면들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바로 그 시대를 나타내는 소품들 때문이다. 90년대를 나타내는 삐삐, 게스티셔츠, 펜티엄컴퓨터, 필름카메라, 시디플레이어 등을 적절히 활용하여 과거의 추억의 이미지를 훨씬 더 효과적으로 환기시켜주었다. 특히 승민과 서연의 정서적 매개체로 등장하는 노래인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은 어떤 향수적인 느낌을 넘어서 그 시대로의 회귀감까지 느끼게 만들었다. 모든 게 아날로그식이었고 촌스러웠지만 그들의 사랑만은 결코 지금 시대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진심이 담겨있고 낭만적인 느낌마저 든다.

 

 

 결국 영화가 관객에게 보고 느끼게 해주고자 했던 것은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다.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의 승민과 서연도,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도 현재를 살고 있는 인간들에 다름 아니다. 그들이 풀지 못했던 감정의 해답들도 현재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현재 결혼을 앞두고 있는 승민과 이혼녀가 되어버린 서연의 감정이 그들의 과거사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띠는 건 바로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다행히 영화는 그들에게서 과잉되거나 부족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우리 모두의 첫사랑을 멋대로 해석하고 싶지 않은 감독의 의도였을까. 그렇게 첫사랑은 현실 속에서 기억으로 떠오르더니 현실감 없이 또 다른 기억을 남기며 다시 떠나간다. 언제 다시 나타날지 기약도 하지 않은 채. 첫사랑의 기억을 이만큼 생(生)의로의 느낌 그대로 잘 풀어낸 영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서적 감흥과 여운이 참으로 크다.

 

 

 과거의 승민과 서연, 현재의 승민과 서연을 연결해주는 집의 의미는 생각보다 효과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과거 서연이 살고 싶어 했던 이층집, 과거 발로 차버린 집 대문을 만지며 흐느껴 우는 현재의 승민 등 결국 인물들의 모든 감정도 건축과 장소라는 공간적인 상징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처음 만났고 다시 재회하게 되는 물리적 공간인 집뿐만 아니라 그들이 공유했던 시간적 공간, 바로 그것이 현재 그들의 감정을 확인하고 과거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아니었을까. 공간과 첫사랑의 의미를 결합시킨 건축학도 출신, 이용주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웰 메이드 영화였다. <불신지옥>(2009)으로 심상치 않은 감독이 등장했다는 걸 느꼈었는데 장르를 바꿔도 자신만의 색깔이 묻어나와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사랑이든 무엇이든 처음 한다는 건 서툴고 촌스럽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때 그 시절의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도 바로 다시는 겪지 못할 그러한 순수함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어서 때문이 아닐까.

출처 : 영화처럼_Like a FILM
글쓴이 : 삼삼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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